서울 강남권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해제된 후 곳곳에서 신고가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 송파구 잠실부터 강남구 대치동,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로 꼽히는 강동구까지 기세가 번져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족쇄'가 풀리면서 집값이 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2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 11일 28억4000만원에 손바뀜해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 28억원(8일), 28억1000만원(5일) 등 28억원대 거래가 잇달아 맺어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13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전에 거래된 매물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해제된 후엔 그나마 남아있던 급매성 매물인 27억원대 매물은 집주인들이 모두 거둔 상황이다. 네이버 부동산과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현재 이 단지 전용 84㎡ 호가는 31억원까지 올랐다.
대치동에서도 신고가가 나왔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대장 아파트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지난 13일 40억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9월 35억1000만원보다 4억9000만원 뛰었다.
여전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대치동 '은마'에서도 신고가가 나왔다. 은마 전용 76㎡는 지난 14일 28억원에 거래됐다. 직전 거래(27억4000만원)보다 6000만원 뛰어 최고가를 달성했다. 실거주해야만 하는 까다로운 상황에도 신고가가 나오면서 업계에선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기존엔 6월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해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미 해제 전부터 '잔금을 해제 이후로 미루자'는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하려는 실수요자들이 있었다"며 "규제 해제 이후로 분위기가 상승 흐름을 탔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삼각맨션 집 천장 외벽이 무너져 사고가 발생했다. 1970년 준공돼 올해 입주 56년차를 맞았다. 단지 노후도가 심각하지만, 15년째 재개발 추진이 재자리걸음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 용산구청이 연내 재개발 사업 정비구역 지정을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사업을 둘러싼 토지 등 소유자간 갈등이 첨예해 추진에 난항이 예상된다.
21일 도심 정비업계에 따르면 용산구청은 지난 20일 삼각맨션 일대 재개발 사업과 관련 서울시와 이달 중 협의 절차를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중 구의회 의견 청취까지 마무리 짓고 7월께 서울시 입안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1가 231-23 일대에 들어선 삼각맨션은 지상 6층 2개동, 130가구 규모다. 대지지분이 없는 C동은 대부분 상가로 구성됐다.
지난 16일 A동 한 가구 거실 천장에서 가로 60㎝, 세로 30㎝ 크기의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무게 20㎏ 정도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가 거실 바닥에 떨어지면서 TV 등 집기가 손상됐다. 용산구청은 구 복지재단을 통해 해당 가구 거주민에 임시 거처를 제안했으나 지인의 집에서 머물겠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각맨션 재개발 추진이 처음 언급된 시기는 2010년이다. 그러나 이후 사업은 사업에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15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구역 내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재개발 사업 참여 여부, 토지소유자들 간 이해 다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시는 2010년 삼각맨션 일대를 비롯한 22개 특별계획구역을 새로 지정했다. 당시는 용산 개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때였다. 또 지하철4·6호선 삼각지역 역세권 기능 활성화도 꾀했다.
2016년 서울시가 나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일환으로 삼각맨션 일대를 정비예정구역으로 재차 지정했다. 한전도 사업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이번에는 주민동의율 부족으로 좌초됐다.
이에 용산구청은 2023년 정비구역 지정 용역 수립을 공공 맡기로 결정했다. 작년 5월에는 용역 결과를 주민에 알리는 설명회를 열었다. ‘삼각맨션 일대 재개발 사업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결정안’ 공람도 진행했다. 공람에는 재개발 이후 최고 높이 120m 이하(38층·우수디자인으로 건축심의 인정시) 570가구로 재탄생 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재개발 사업이 순항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삼각맨션 일대 재개발 사업 총 면적 2만860㎡ 가운데 한번 변전소 부지인 8626㎡가 문제가 됐다. 삼각맨션과 인근 상가 단독필지 토지소유자들 간 상이한 계산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사업 진척이 없자 한전은 소유 부지 중 3712㎡를 토지소유자들에게 매각하고 종이자석스티커 남은 4914㎡ 변전소를 짓겠다고 나섰다. 한전 부지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한전 부지의 매각 면적 정도를 놓고 세 개 단체로 나뉜 토지소유자 간 의견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용산구는 안전 문제가 발생한 만큼 관련 절차에 속도를 내 연내 재개발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집값 상승세는 인근으로 번졌다. 서초구에서도 상승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반포자이' 전용 165㎡는 지난 8일 58억원에 거래돼 지난해 11월보다 1억원 더 뛰면서 신고가를 기록했다.
잠원동에 있는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전용 104㎡도 지난 8일 40억5000만원에 신고가를 찍었다. 지난 1월 거래된 38억5000만원보다 2억원이 뛰었다.
반포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설 연휴 이후 실수요자들의 문의가 늘어나면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시장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길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4구로 꼽히는 강동구에서도 신고가가 나왔다.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는 지난 12일 21억원에 손바뀜해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1월 거래된 19억8000만원보다 1억2000만원 더 올랐다.
같은 동에 있는 '래미안힐스테이트고덕' 전용 59㎡도 지난 8일 14억5500만원에 팔리면서 최고가에 올라섰다. 지난해 12월 14억2000만원보다 3000만원가량 더 오른 수준이다.
고덕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강동구 집을 처분하고 송파구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며 "시장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면 거래도 활발해질 것이라 본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강남권 집값이 상승 분위기를 타면서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로 강남권에 채워졌던 '족쇄'가 풀린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라면서 "집값 상승 흐름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남권 비강남권의 집값 양극화 현상도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그동안 억눌렸던 가격이 빠르게 올라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지나면 점차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2월 셋째 주(17일) 기준 서울 집값은 0.06% 올라 전주(0.02%)보다 상승 폭이 더 커졌다. 송파구가 0.36%, 강남구가 0.27% 서초구가 0.18% 오르는 등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는 모양새다.
매수 심리도 개선되고 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둘째 주(10일) 기준 강남 3구가 포함된 동남권 매매수급지수는 100.2를 기록해 9주 만에 다시 기준선인 100을 넘어섰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200에 가까워질수록 집을 팔려는 집주인보다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들이 많다는 뜻이다.